홀빈과 분쇄 원두 차이, 초보는 뭘 살까?

홀빈을 사야 향이 좋다는데, 홈카페 초보도 꼭 그라인더부터 준비해야 할까요? 그라인더가 없다면 추출 도구에 맞춘 분쇄 원두를 소량씩 사고, 그라인더가 있으며 여러 방식으로 커피를 내린다면 홀빈이 편합니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이 더 고급인가가 아니라, 향을 잃는 것과 번거로워서 안 마시게 되는 것 중 내게 더 큰 손실이 무엇인지입니다.

  • 그라인더가 없다면 사용하는 추출 도구에 맞게 간 분쇄 원두를 적은 양으로 구입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 분쇄도를 조절할 수 있는 그라인더가 있거나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를 번갈아 마신다면 홀빈이 유리합니다.
  • 홀빈도 갈지 않아 봉투에 남으면 좋은 선택이 아니고, 분쇄 원두도 빨리 마실 수 있는 양을 사면 편리함을 살릴 수 있습니다.
  • 원두를 고를 때는 처음 맡는 향뿐 아니라 삼킨 뒤 남는 향과 내 입맛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홀빈이 담긴 유리병과 분쇄 원두가 담긴 포터필터, 그라인더와 에스프레소 머신이 놓인 집 홈카페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에스프레소 머신과 그라인더입니다. 홀빈과 분쇄 원두를 실제 홈카페 환경에서 비교하기 위해 직접 촬영했습니다.
목차

홈카페 초보, 홀빈과 분쇄 원두 중 무엇을 살까?

2016년, 커피에 갓 흥미가 생겼을 무렵 저는 그라인더 없이 동네 로스터리에서 분쇄 원두를 사서 홈카페를 시작했습니다. 그라인더 값이 부담스러웠고, 매일 아침 원두를 가는 시간을 낼 자신도 없었거든요.

그라인더가 없다면 분쇄 원두를 소량씩 사고, 그라인더가 있으며 여러 방식으로 커피를 내린다면 홀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기준입니다. 어느 쪽이 더 고급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향을 잃는 손실과 번거로워서 커피를 건너뛰게 되는 손실 중 내게 더 큰 쪽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문제입니다.

홀빈은 볶은 원두를 갈지 않은 상태이고, 분쇄 원두는 추출할 수 있도록 미리 갈아 놓은 원두입니다. 차이는 모양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홀빈에는 매번 갈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분쇄 원두에는 갈린 뒤 향이 더 빠르게 달라질 수 있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향 좋은 홀빈이라도 아침마다 가는 일이 귀찮아 원두가 봉투 속에 그대로 남는다면, 그 경우에는 소포장 분쇄 원두가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상황 현실적인 선택 줄일 수 있는 손실
그라인더가 없고 아침이 바쁘다 추출 도구에 맞춘 분쇄 원두 번거로워 커피를 건너뛰는 일
한 가지 추출 도구만 쓴다 소포장 분쇄 원두 필요 없는 장비 구입과 분쇄 실패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를 번갈아 마신다 홀빈 추출법과 맞지 않는 분쇄도
커피를 일주일에 한두 번만 마신다 적은 용량의 홀빈 또는 분쇄 원두 오래 남겨 향이 달라지는 일
내리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홀빈 갈 때 퍼지는 향을 놓치는 일

만약 그라인더를 산다면, 7일만 확인해 볼 것

새 장비를 고르기 전에 일주일 동안 세 가지만 적어 보세요. 아침에 원두를 갈 1분이 있는지, 일주일에 실제로 몇 잔을 마시는지, 한 가지 추출 도구만 쓰는지를 확인하는 겁니다.

갈기 귀찮아 커피를 건너뛴 날이 여러 번이라면 분쇄 원두가 생활에 더 잘 맞습니다. 반대로 원두를 고르고 가는 시간까지 즐겁고 추출법도 자주 바꾼다면 홀빈을 선택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가장 신선하다는 원두보다 끝까지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원두가 초보에게는 더 좋은 출발점입니다.

원두는 왜 갈아 놓는 순간부터 향이 달라질까?

우리 어머니는 통깨를 직접 볶으시고, 요리에 넣으실 때마다 그 자리에서 빻아 넣으시며 이렇게 해야 더 고소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통깨가 든 병을 열었을 때보다 방금 빻은 깨에서 훨씬 진한 냄새가 퍼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원두를 가는 순간 공기와 맞닿는 표면적이 크게 늘면서 그 안에 갇혀 있던 휘발성 향기 성분이 한꺼번에 빠져나오기 때문에, 갈아놓은 직후의 향이 가장 강하고 그 뒤로는 계속 옅어집니다. 그라인더 뚜껑을 여는 순간 향이 확 퍼지는 느낌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측정되는 현상입니다.

2003년 Akiyama 연구팀은 볶은 커피를 가는 동안 방출되는 휘발성 성분을 GC/MS와 GC/O로 분석했습니다. 분쇄 중 포집한 향에서는 이미 갈아 놓은 커피의 정적인 헤드스페이스와 비교했을 때 견과류 향과 스모키한 로스트 향을 내는 성분이 풍부하게 관찰됐습니다.

이렇게 빠져나온 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채워지지 않습니다. 2006년 Anese, Manzocco, Nicoli는 다크 로스트 분쇄커피를 30°C에서 최대 한 달간 보관하면서 포장을 주기적으로 열고 닫는 조건을 만들어 실험했습니다. 연구에서는 헤드스페이스의 휘발성 성분 농도가 관능적 품질 저하를 추적하는 지표로 쓰일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실험은 30°C라는 특정 온도와 인위적인 개폐 조건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그 수치를 우리 집 주방 환경의 보관 일수로 그대로 옮겨 "며칠까지는 신선하다"라고 계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분쇄 원두는 무조건 피할 것이 아니라, 빨리 마실 수 있는 양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잔에 원두 15g을 사용한다면 200g 한 봉지는 약 13잔 분량입니다. 하루 한 잔을 마시는 집과 일주일에 두 잔을 마시는 집이 같은 크기의 봉투를 살 이유는 없습니다.

처음 향은 좋은데 끝에 올라오는 향은 싫은 이유

우리 집에는 홈카페용 머신과 한때 유행하던 일리 캡슐커피 머신이 함께 있습니다. 딸아이가 사달라고 졸라서 사주긴 했는데, 처음에는 커피 향이 좋다며 제법 잘 마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커피를 삼킨 뒤 코 쪽으로 올라오는 끝 향이 싫다고 하더군요. 결국 손이 뜸해졌고, 지금은 머신도 캡슐 한 통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건, 우리 딸에게는 커피를 고를 때 신선도나 편리함만큼이나 마신 뒤 입안에 남는 향이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처럼 처음 코로 맡은 향은 좋아도 삼킨 뒤 올라오는 향은 싫을 수 있습니다. 얼핏 앞뒤가 맞지 않는 말처럼 들리시겠지만, 감각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커피를 마시기 전에 코로 맡는 향은 비강 앞쪽으로 들어오는 '오르토나잘 향'이고, 커피를 삼킨 뒤 입안에서 코 쪽으로 올라오는 향은 '후비강 향' 또는 '레트로나잘 아로마'입니다. 향을 감지하는 길과 맛이 함께 느껴지는 상황이 서로 다른 셈이지요.

2019년 Paravisini 연구팀은 같은 강도로 맞춘 여러 쓴맛 성분에 커피 향 분리물을 조합해 후비강으로 느껴지는 향의 변화를 살폈습니다. 서로 다른 쓴맛 성분은 훈련된 평가자들이 느끼는 후비강 커피 향의 양상을 다르게 바꿨지만, 코로 먼저 맡는 향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실험이 우리 딸의 입맛을 검사한 결과는 물론 아닙니다. 다만 "삼키기 전 향은 좋았는데 삼킨 뒤 올라오는 향은 싫다"는 경험이 우연한 불평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감각 경로에서 실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점은 이 연구로 뒷받침됩니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고 보관 중인 일리 캡슐커피 머신과 남은 캡슐
끝 향이 입맛에 맞지 않아 사용하지 않게 된 우리 집 일리 캡슐커피 머신

입맛에 안 맞는 캡슐커피 활용법

입맛에 맞지 않는 캡슐이 남았다고 바로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캡슐에 표시된 소비기한과 밀봉 상태를 확인하고, 오래 쉬었던 머신은 제조사의 세척 방법에 따라 관리한 뒤 새 물로 충분히 헹궈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대로 마셨을 때 끝 향이나 쓴맛이 부담스럽다면 우유 150~180mL를 더해 라테로 만들거나, 초콜릿을 곁들인 모카로 바꾸면 인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소량 부어 아포가토로 먹거나, 추출한 커피를 얼려 우유에 넣고, 티라미수나 커피 케이크의 시럽으로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

포장이 온전하고 소비기한이 남은 미개봉 캡슐이라면 입맛에 맞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나누는 편이 가장 간단합니다. 반대로 밀봉이 뜯겼거나 내용물이 눅눅하고 평소와 다른 냄새가 난다면 디저트에 섞어 감추지 말고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이 사례는 특정 브랜드의 품질 평가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입맛과 사용 경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핸드드립·에스프레소, 원두 분쇄도는 어떻게 고를까?

십여 년 전, 커피에 한창 푹 빠져 있던 시절에도 원두를 주문하면서 그냥 "곱게 갈아 주세요"라고만 적었다가 핸드드립 필터에서 물이 거의 안 빠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저도 추출 도구마다 맞는 분쇄도가 따로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알고 보니 판매처는 에스프레소 기준으로 갈아 보낸 것이었습니다.

분쇄 원두를 주문할 때는 분쇄 강도를 직접 말하기보다 사용할 추출 도구 이름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대체로 에스프레소는 고운 분쇄, 핸드드립은 중간 정도, 프렌치프레스처럼 물에 오래 담가 두는 방식은 굵은 분쇄에서 시작합니다. 다만 드리퍼 구조, 필터, 머신과 바스켓, 원두 상태에 따라 알맞은 지점이 달라지므로 이 구분은 출발점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입자 크기가 제각각인 원두는 가는 국수와 두꺼운 수제비를 한 냄비에서 함께 익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같은 시간 동안 물에 닿아도 작은 입자는 더 빨리 성분이 나오고, 큰 입자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추출됩니다. 그래서 평균 굵기만 비슷하다고 결과까지 늘 같은 것은 아닙니다.

2024년 Smrke, Eiermann, Yeretzian은 에스프레소에서 100μm보다 작은 미분의 비율을 조절해 추출 흐름을 살폈습니다. 미분 비율이 늘면 커피층의 투과성이 낮아지고 유속이 줄며 추출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이 실험은 에스프레소 조건에서 진행됐으므로 수치 자체를 핸드드립이나 프렌치프레스에 그대로 옮겨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결과가 보여주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분쇄도를 이야기할 때 '굵다/곱다' 한 가지 기준만으로는 부족하고, 입자가 얼마나 고르게 갈렸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라인더 없이 분쇄 원두를 주문한다면 판매처에 핸드드립, 모카포트, 에스프레소 머신처럼 실제 사용하는 도구를 정확히 알려 주세요. 특히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은 기종과 바스켓에 따라 맞는 분쇄도가 달라질 수 있어, 한 번에 많은 양을 갈아 사기보다 적은 양으로 추출 상태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원두는 봉투를 열었을 때보다 몇 주 뒤 주방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향을 지키려고 산 홀빈이 손도 대지 않은 채 남았다면 좋은 선택이라 하기 어렵고, 조금씩 자주 산 분쇄 원두를 매일 즐겁게 마셨다면 그쪽이 내 생활에는 더 잘 맞는 선택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그라인더가 없으면 홀빈을 사면 안 되나요?

홀빈은 추출 전에 반드시 갈아야 하므로 집에 그라인더가 없다면 판매처에서 사용하는 도구에 맞게 갈아 달라고 요청하는 편이 편합니다. 선물로 받은 홀빈이라면 한꺼번에 전부 갈기보다 가까운 로스터리에서 가능한 만큼만 나눠 분쇄할 수 있는지 문의해 보세요.

Q2. 분쇄 원두는 한 번에 얼마나 사는 것이 좋나요?

며칠이라는 숫자보다 내가 마시는 잔 수로 계산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한 잔에 15g을 쓴다면 200g은 약 13잔입니다. 주당 소비량을 계산해 가능한 한 오래 남지 않는 포장 단위를 고르세요.

Q3. 에스프레소용 분쇄 원두를 핸드드립에 사용해도 되나요?

사용은 가능하지만 너무 고운 원두는 물 빠짐을 늦추고 추출 결과를 바꿀 수 있습니다. 반대로 드립용으로 비교적 굵게 간 원두는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물이 너무 빨리 통과할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추출 도구별로 맞춘 분쇄도를 선택하는 편이 좋습니다.

Q4. 입맛에 맞지 않는 캡슐커피는 어떻게 활용하나요?

소비기한과 밀봉 상태에 문제가 없다면 라테, 모카, 아포가토, 커피 얼음이나 베이킹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끝 향이 불편하다면 억지로 마시기보다 미개봉 캡슐을 나누는 방법이 낫습니다.

References

Akiyama, M., Murakami, K., Ohtani, N., Iwatsuki, K., Sotoyama, K., Wada, A., Tokuno, K., Iwabuchi, H., & Tanaka, K. (2003). Analysis of Volatile Compounds Released during the Grinding of Roasted Coffee Beans Using Solid-Phase Microextraction. Journal of Agricultural and Food Chemistry, 51(7), 1961–1969. https://doi.org/10.1021/jf020724p

Anese, M., Manzocco, L., & Nicoli, M. C. (2006). Modeling the Secondary Shelf Life of Ground Roasted Coffee. Journal of Agricultural and Food Chemistry, 54(15), 5571–5576. https://doi.org/10.1021/jf060204k

Paravisini, L., Soldavini, A., Peterson, J., Simons, C. T., & Peterson, D. G. (2019). Impact of Bitter Tastant Sub-qualities on Retronasal Coffee Aroma Perception. PLOS ONE, 14(10), e0223280.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23280

Smrke, S., Eiermann, A., & Yeretzian, C. (2024). The Role of Fines in Espresso Extraction Dynamics. Scientific Reports, 14, 5612. https://doi.org/10.1038/s41598-024-55831-x

글쓴이 소개
mary wells garden — 저온 로스팅 기술 특허 보유자
2013년부터 160°C 이하 저온 로스팅의 효과를 독자적으로 연구해 왔으며, 관련 로스팅 기술로 특허(제10-2916444호)를 취득했습니다. 유럽 바리스타 자격증과 국내 바리스타 자격을 보유하고 있지만 바리스타로 직접 활동하지는 않고, 오직 '저온 로스팅' 한 가지 주제에만 집중해 10년 넘게 자료를 모으고 실험해 왔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그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공개된 연구 자료를 근거로, 원두의 성분 변화와 항산화 성분 보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음 이전